전략품목 목록을 처음 보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인다. 고성능 금속, 반도체용 화학소재, 스마트 섬유, 에너지용 세라믹처럼 이름도 크고 목표도 높다. 하지만 로드맵은 기업이 그대로 따라야 할 쇼핑 목록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어떤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에 가깝다. 지도에서 우리 회사의 위치를 먼저 찾지 않으면, 좋은 품목도 남의 이야기가 되기 쉽다.
중소기업 전략기술로드맵의 첨단소재 편은 금속·화학·섬유·세라믹 분야별로 전략품목 후보군과 확정 품목, 개발 로드맵을 함께 다룬다. [1]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품목 이름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현재 제품·공정·고객과 연결되는 문제를 찾는 일이다.
전략품목은 크게 네 가지 질문으로 읽을 수 있다
전략품목은 소재 이름으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금속 분야에서는 경량화, 고온 환경, 저탄소 공정, 공정 데이터가 자주 등장한다. 화학 분야에서는 고순도, 수명, 규제 대응, 재활용성이 중요한 축이다. 섬유 분야는 기능 유지와 순환성, 세라믹 분야는 분말·소결·가공·신뢰성이 핵심 과제로 이어진다.
| 기술의 방향 | 기업이 먼저 확인할 것 |
|---|---|
| 새로운 소재 성능 | 현재 제품보다 무엇이 좋아져야 하고, 그 성능을 어디서 측정할 수 있는가 |
| 공정 개선 | 불량·에너지·시간·원가 가운데 어떤 문제를 줄이려는가 |
| 수입대체·공급망 | 원료와 장비, 검사 기준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
| 새 응용처 | 실제로 제품을 써 볼 고객과 사용 환경이 정해져 있는가 |
같은 전략품목 안에서도 기업마다 출발점은 다르다. 어떤 회사는 이미 고객사에 납품하는 소재를 조금 더 개선하려 하고, 어떤 회사는 아직 실험실에서 새로운 조성을 확인하는 단계일 수 있다. 그래서 품목명보다 더 먼저 봐야 할 것은 내 기술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다.
TRL은 기간표가 아니라 성숙도 지표다
기술성숙도, 즉 TRL은 기술이 아이디어와 개념 검증 단계에 있는지, 시제품 시험 단계인지, 실제 환경에서 검증된 단계인지를 가늠하는 도구다. NASA의 안내처럼 TRL은 1부터 9까지의 단계로 기술의 성숙도를 평가하며, 낮은 단계는 기초 원리와 개념 검증에 가깝고 높은 단계는 실제 운용 환경에서 검증된 상태에 가깝다. [2]
다만 TRL 숫자를 개발 기간표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같은 단계라도 소재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화학 조성을 만드는 일과 세라믹 부품을 고객 장비에서 장기간 시험하는 일은 모두 시간이 걸리지만, 필요한 설비와 검증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인증이 필요한 의료용 소재나 장비 승인에 시간이 걸리는 반도체 소재는 기술이 준비돼도 사업화가 늦어질 수 있다.
TRL은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보여주지만,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제품과 목표 사이의 거리를 봐야 한다
전략품목의 목표 수치를 볼 때는 숫자가 높아 보이는지보다 현재 제품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열전도도, 강도, 순도, 수명, 불량률처럼 측정 가능한 목표가 있어도,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조성을 바꿔야 하는지, 설비를 바꿔야 하는지, 고객의 공정을 바꿔야 하는지가 다르다.
현재 제품을 조금 개선하면 되는 과제라면 공정 최적화와 시험 데이터가 중심이 될 수 있다. 반면 원료나 제조 원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면, 단기간의 실증 과제보다 대학·연구기관과 함께 기반 기술을 확인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할 수 있다. ‘목표가 높다’는 표현만으로는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소재기업이 자주 놓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성능 목표만 보고 개발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측정 장비나 시험기관, 고객사의 평가 조건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목표는 개발팀이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고객과 시험 환경이 함께 만드는 조건이다.
품목을 고르기 전에 다섯 가지를 적어보면 된다
전략품목을 검토할 때 적어 볼 다섯 가지
- 우리 회사가 현재 만들 수 있는 제품의 형태는 무엇인가. 분말, 필름, 코팅액, 부품, 원단 중 어디에 가까운가.
- 고객이 지금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성능 부족인지, 품질 편차인지, 규제 대응인지, 원가와 납기인지 적어 본다.
- 목표 성능을 확인할 시험 방법과 시험기관은 있는가.
- 개발이 끝났을 때 시제품을 평가할 수요기업이나 적용 환경이 있는가.
- 원료·설비·인력·인증 가운데 현재 회사가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다섯 가지 가운데 답이 많은 품목이 현재 회사와 가까운 품목이다. 반대로 품목 이름은 매력적이지만 제품 형태도, 고객도, 시험 방법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한 번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로드맵과 회사의 거리를 솔직하게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다.
중소기업은 소재 하나보다 연결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첨단소재 분야에는 대규모 장비와 긴 검증 기간이 필요한 품목이 많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원료 배합, 특수 가공, 표면 처리, 소량 맞춤 생산, 공정 자동화, 품질 측정, 신뢰성 시험처럼 큰 제품을 완성하는 과정에는 여러 전문 역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최종 소재를 만들겠다’는 말보다, 우리가 잘하는 공정이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금속 분야에서는 성형·접합·후처리, 화학 분야에서는 정제·배합·코팅, 섬유 분야에서는 구조 설계와 후가공, 세라믹 분야에서는 분말·성형·정밀가공처럼 각자가 잘하는 구간이 다르다.
수요기업이나 시험기관과의 협업도 이때 의미가 생긴다. 이름만 많은 컨소시엄보다, 소재를 누가 만들고 누가 부품으로 만들며 누가 평가할지 분명한 구조가 더 중요하다. 전략품목은 협업의 제목이 될 수는 있어도, 협업의 내용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로드맵을 읽는 마지막 기준은 ‘다음 단계’다
좋은 전략품목은 개발 과제가 끝난 뒤의 다음 단계가 보이는 품목이다. 시험성적서가 나오면 어느 고객이 평가할지, 고객 평가가 끝나면 어떤 인증과 설비가 필요한지, 양산으로 가면 원료와 품질을 어떻게 관리할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로드맵을 볼 때는 올해 무엇을 시작할지보다, 개발이 끝난 뒤 무엇이 남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좋다. 우리 회사의 제품과 공정, 고객의 문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한 줄로 이어지는 품목이라면 그곳이 가장 먼저 살펴볼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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